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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취미/문화

by 천승원 2019. 6. 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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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오전 내내 침대에 누워 게으름 피우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 즈음 집을 나섰다.

당장 월요일 아침부터 프로그래밍 교육이 시작되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파이썬 기초과정을 떼고 싶었다.

 

 

평소에 자주 가던 이디야 카페 대신, 천장이 높고 원목가구로 가득한

그리고 초록빛 식물로 포인트를 준 카페로 향했다. 

 

(이음동의어로는 커피값이 비싸 보이는 개인 카페)

 

 

새로 생긴 카페지만 공부하러 가서 몇 시간씩 (내 집중력으로는 길어봐야 4시간이지만)

앉아있기에 부담스럽게 멋진 인테리어를 가진 카페이다. 

 

 


 

 

내 생각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주문을 하고 기분 좋게 기다란 원목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멍하니 카페라떼를 기다리는 중

테이블 한 가운데 반가운 작가 이름이 보였다.

 

 

내게 인도여행의 꿈을 심어주었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의 작가이자 시인 '류시화'

(작가님은 시인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하시는 거 같다.) 

 

 

알아보니 올해 3월에 출간한 신작이다.

 

류시화 시인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가 덩그러니 테이블 한가운데 놓여있다.

빨리 파이썬 기초 교재를 끝내야 한다는 오늘의 사명과는 별개로 우연히 마주친 반가움에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류시화 시인은 저어어엉말 읽기 쉽게 글을 쓰신다.

여전히 인도 설화로 시작하는 책은 시인이 왜 글을 쓰는지 또 시인의 숙명은 무엇인지를 말하며 시작했다. 

 

 

술술 읽히는 문장과 읽다가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게 만드는 깊이 

류시화 시인이 페이스북에 업로드하신 시와는 달리 글은 정말 친절하다.

 

 


 

 

나의 첫 문화 카테고리 포스트는 단지 반가운 시인 이름을 우연히 만나서가 아니다.

 

시인이 인용한  한 구절의 내용이 지난 여행을 떠올리게 해서

카테고리만 만들어 놓고 아직 한 글자도 적지 못한 '문화'라는 거창한 카테고리에 끄적일 자신감을 주었다.

(카테고리 명을 바꿔야겠다. 너무 거창한 거 같다.)

 

 

 


그렇다, 빗소리를 들으며 촛불 아래 글을 쓰는 것은 시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이었다.

깊은 밤 홀로 강의 섬뜩한 물빛과 마주하는 것도, 폐렴을 개의치 않고 비를 맞는 것도

시인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작가는 비를 맞는 바보'라고 나탈리 골든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말했다.

폭우가 쏟아져 사람들이 우산을 펴거나 신문으로 머리를 가리고 서둘러 뛰어갈 때,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비를 맞는 바보라는 것이다.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거나 시간에 맞춰 어딘가에 도착하기보다 무늬를 그리며 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응시하는 것, 그것이 작가가 자신의 빛나는 순간을 붙잡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중


 

 

 

위 구절을 읽다 보니 카미야네츠 포딜스키 여행 생각이 났다.

우크라이나 남부에 있는 절벽 위에 멋진 요새가 랜드마크인 도시인데, 그곳에서 마주친 커플이 생각났다.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

다들 손에 든 것으로 머리만 대충 덮고 뛰어다닐 때

 

조각상 아래에서 사납게 쏟아지는 비를

피하는 둥, 마는 둥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생겨서 좋다는 표정으로 

아이처럼 웃던 연인

 

비가 완전히 그칠 때까지 20분가량 수다를 떨고 있었다.

 

'폭우가 쏟아져 사람들이 우산을 펴거나 신문으로 머리를 가리고 서둘러 뛰어갈 때,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비를 맞는 바보라는 것이다.'

 

저분들은 류시화 시인이 인용한 글귀에 나오는

작가처럼

그들만의 이야깃거리 생겨서 기분 좋게 비를 맞은 건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다.

 

 

 


 

 

 

4년 전 카미아네츠 포딜스키에서 저 사진을 찍을 때는

예상치 못한 소나기를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가진 커플이 부러워서 사진에 담았다.

 

 

무언가 성숙한 진짜 어른들의 연애 같았고 순간을 즐길 줄 아는 분들끼리 만나서 정말 잘 어울린다 생각했었다.

 

 

그리고 오늘 류시화 시인이 인용한 글을 읽고

그때의 순간이 내게 주었던 복합적인 감정과 해석이 명쾌하게 정리가 되었다. 

 

 


 

 

 

카미아네츠 포딜스키, 어느 조각상 아래에서 비를 맞던 연인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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